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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 2025. 3. 30.

    by. ideas-7708

    목차

       
      조선 후기 미술사
       
       
       

       

      조선 후기(17세기 중반~19세기 말)는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입니다. 17세기 중반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등장이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조선은 문화적 자주성을 강화하며 독자적인 미술 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이 시기는 한국 회화의 황금기로 평가받으며, 진경산수화의 등장과 풍속화의 발전 등 다양한 장르에서 혁신이 이루어졌습니다.

       

      진경산수화의 발전

      조선 후기 미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畫)의 등장입니다. 초기 조선 시대의 산수화는 중국 남종화와 북종화의 영향을 받아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풍경을 그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선(鄭敾, 1676-1759, 호: 겸재)을 중심으로 실제 한국의 산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진경산수화가 발전했습니다.

      정선은 금강산을 비롯한 한국의 명산을 직접 답사하며 그 실제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의 대표작 '금강전도(金剛全圖)'는 금강산의 실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담아냈습니다. 이러한 진경산수화는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진경시대'라 불리는 조선 후기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김홍도와 같은 후대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풍속화의 발전

      조선 후기 미술의 또 다른 특징은 풍속화의 발전입니다. 김홍도(金弘道, 1745-?, 호: 단원)와 신윤복(申潤福, 1758-1814, 호: 혜원)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풍속화가로,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김홍도는 씨름, 농사일, 빨래하는 모습 등 서민들의 일상을 해학적이면서도 생동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그의 작품 '씨름'에서는 선수들의 표정과 동작을 통해 경기의 긴장감과 결과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김홍도는 풍속화뿐만 아니라 산수화, 인물화, 도석화, 화조화, 불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신윤복은 양반과 기생의 만남, 남녀의 애정 표현 등 당시 사회의 숨겨진 모습을 대담하게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은 당시 사회의 감춰진 욕망과 감성적 측면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으며, 이로 인해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신윤복의 작품 30점을 모은 '혜원풍속화첩'은 1970년 국보 제13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불교 미술의 변화

      조선 후기 불교 미술에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와 달리 후기에는 불교 회화의 재료와 형식, 구성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비단 대신 삼베가 주요 그림 재료로 사용되면서, 밝은 보색 대비(예: 주홍색과 녹색)를 활용한 선명한 화풍이 발전했습니다.

      또한 10미터가 넘는 대형 불화인 괘불(掛佛)이 제작되었는데, 이는 수륙재와 같은 야외 의식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대형 불화는 주불을 중심으로 많은 권속과 수호신을 빽빽하게 배치하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후원자층의 등장과 사찰 공동체의 변화를 반영합니다.

       

      초상화의 발전

      조선 후기에는 초상화 기법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특히 문인 초상화는 스타일과 형식 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초상화 제작 기법은 점점 더 사실적으로 발전했으며, 얼굴의 미세한 특징을 정확히 포착하여 대상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조선 후기 초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청색 도포와 검은색 깃, 단, 가장자리가 있는 난삼(襴衫)과 함께 뾰족한 피라미드형 모자(정자관, 程子冠)를 포함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며, 초상화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해졌음을 보여줍니다.

       

      책가도와 문자도

      조선 후기에는 책가도(冊架圖)와 문자도(文字圖)와 같은 새로운 회화 장르도 발전했습니다. 책가도는 정조 시대에 등장한 화풍으로, 책과 도자기, 기타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 찬 책장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이는 당시 지식과 학문에 대한 열망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자도는 유교의 8가지 덕목을 상징하는 문자를 그린 병풍으로, 유교적 가치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장르의 발전은 조선 후기 사회의 문화적, 사상적 변화를 반영합니다.

       

      도자기 예술

      조선 후기 도자기 예술에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1751년 서울 근처 광주 분원리에 관영 가마가 설립되었고, 1884년에는 분원이 민영화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특히 백자가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꾸밈없는 형태, 절제된 장식, 미묘한 색상 사용 등 유교적 이상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자기는 더욱 전통적인 한국 유약과 지역적 필요에 맞는 특정 디자인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백자의 부상은 유교적 영향과 이상의 결과로, 인위적인 복잡함이 없는 순수하고 꾸밈없는 형태를 추구했습니다.

       

      조선 후기 미술의 의의

      조선 후기 미술은 중국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특히 진경산수화의 발전은 한국 고유의 자연과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며 한국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풍속화의 발전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예술의 주제로 끌어올림으로써 미술의 대중화와 함께 한국 미술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홍도, 신윤복, 정선으로 대표되는 조선 후기의 화가들은 한국 전통 회화의 뿌리, 핵심, 결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불교 미술의 변화는 종교적 실천과 예술적 표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초상화의 발전은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조선 후기 미술은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며, 그 영향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발전한 예술적 표현과 기법은 한국 미술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한국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