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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미술은 유교적 통치체계가 정비되고 그 영향력이 강화되던 시기에 형성되었으며, 조선 500년 역사와 문화의 방향을 정립한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세종대왕 재위기간(1397~1450)에는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두드러진 성과가 있었으며, 회화와 서예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조선초기 미술의 특징과 배경
조선초기는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던 시기였습니다. 세종 대에는 유교이념에 입각하여 삼강오륜의 중요성이 고취되고 집현전이 건립되는 등 유교적 예술의 초석이 마련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유학은 중국 유학이 우주론적 관심을 앞세운 것과 달리 인간의 심성문제에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에 사대부 중심의 문인화가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에서는 도화원(圖畵院, 훗날 도화서로 개칭)을 설치하여 화원들을 양성했고, 이들은 국가의 각종 행사를 기록하거나 사대부의 요구에 맞는 계회도, 초상화 등을 그리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화원들은 전문 화가로서 관원으로 채용되어 도화서에 소속되었으며, 종6품까지의 벼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초기 미술작품은 고려와 달리 유교생활에 바탕을 두고 양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용성과 예술성을 잘 조화시켜 자연미를 살리면서 고상하고 기품이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 그림은 문인화든 화원의 그림이든 선비들의 고상한 생활철학을 반영하고 있으며, 필치가 힘차고 구성이 간결한 특징을 보입니다.
조선초기 회화의 발전
조선 초기(1392~1550)의 회화는 여러 면에서 조선시대 회화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문화의 꽃을 피운 세종조 연간을 중심으로 안견, 강희안을 비롯해 서예가 안평대군 등 혜성 같은 화가들을 배출하였으며, 격조 높은 한국적 화풍을 이루어 후대 회화 발전의 토대를 굳건히 하였습니다.
명나라와의 회화 교섭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중국화풍을 수용하고 소화하여 한국적 화풍을 이루어냈습니다. 우선 북송 곽희파 화풍과 마하파 화풍을 받아들여 우리 나름의 개성있는 화풍을 이룩한 안견파 화풍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안견파 화풍은 일본 무로마치 시대 산수화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는데, 일본 수묵화의 비조인 슈우분은 1424년 조선에 머물렀던 것을 계기로 안견파 화풍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문인화가 강희안은 명대 원체화풍과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문기 넘치는 자신만의 화풍을 이룩했고, 절파는 중기에 이르러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남송의 마하파 화풍을 수용은 안견파 일부의 작품과 전칭 이상좌의 <송하보월도>에서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으며, 최숙창, 서문보, 이장손 등의 15세기 말 화원들에 의해 원대 고극공계 미법산수화풍도 수용되었습니다.
주요 화가와 작품
안견(安堅)
안견은 세종조에 배출된 조선 전기 최고의 산수화가로 곽희파 화풍을 토대로 마하파 화풍을 종합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었습니다. 안견이 대가로 성장하는 데에는 세종의 동생이자 당대 최고의 송설체 서예가였던 안평대군의 역할이 컸습니다.
안견의 대표작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에게서 1447년 어느날 꿈속에서 본 무릉도원이라는 이상 세계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묘사한 그림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한쪽에 치우친 편파 구도, 몇 개의 흩어진 경군들로 이루어진 구성, 넓은 공간과 여백을 중요시하는 공간 관념, 대각선 운동의 효율적인 운용 그리고 개성이 강한 필묵법 등 안견이 형성한 화풍의 특색을 잘 보여줍니다.
안견의 화풍은 16세기 전반에 양팽손과 그 밖의 화원들에 의하여 추종되었고, 그 뒤의 조선 중기 화단에서도 끈질기게 추종되었습니다. 이처럼 안견파 화풍은 조선시대 회화의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강희안(姜希顔)
강희안은 세종조의 유명한 선비화가로, 명대 원체화풍과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나름대로 소화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고사관수도>는 바위에 턱을 괸채 걸터 앉아 수면을 바라보는 선비를 그린 작품으로, 고아한 풍모, 필치활당 세련된 짙은 문기, 강렬한 흑백 대비 효과, 속도감 있고 날렵한 필선, 거침없는 먹의 사용, 인물이 크게 부각된 점 등 절파계 소경인물산수화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상좌(李上佐)
이상좌는 노비였다가 도화서 화원이 된 화가로, 남송 마하파화풍을 수용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송하보월도>는 바람을 등 뒤로 맞는 선비가 소나무에 비친 달을 보며 산책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굴곡진 소나무, 편파구도, 인물중요, 원경생략법 등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암(李巖)
이암은 조선 초중기에 활동하여 독특한 동물화의 세계를 펼친 화가로, 특히 강아지를 그린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모견도>에서는 나무밑 어미개와 젖을 파고드는 강아지들을 그려냈고, <화조구자도>에서는 세 마리 강아지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이암의 강아지 그림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적 취향이 물씬 풍깁니다.
계회도(契會圖)의 발전
조선 초기에는 관리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가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관리 모임 그림은 조선 초기 회화에서 독특하고 활기찬 장르를 형성했습니다. 이는 신유학 교육과 문학적 유창함이 초기 조선 사회에서 사회적 진보의 열쇠로 여겨졌음을 증명합니다. 일반적으로 각 참가자가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시각적 기록의 사본이 만들어졌지만, 일부 그림은 단일 작품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왕족 출신 화가들의 등장
조선 초기의 특이한 현상 중 하나는 왕족 직계 후손 출신 예술가들의 등장이었습니다. 왕족 혈통의 뛰어난 예술가로는 세종의 증증손인 이암(1507-1566)과 이정(1541-1622), 성종의 아홉 번째 아들인 이성군의 증손자인 이경윤(1545-1611), 이경윤의 서자인 이징(1581-1645년 이후)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조직화된 그룹을 형성하지 않았고, 특정 장르나 화풍을 공유하지도 않았습니다. 실제로 각자 그 시대 예술에 독특한 기여를 했습니다.
일본 미술에 미친 영향
조선 초기 일부 한국 불교 화가들은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일본 소가학파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이수문(1400?-1450?)은 1424년 한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쇼코쿠지의 나이 많은 승려 화가인 슈분의 배 동료였습니다. 일본 전통에 따르면 이수문은 '메기와 호리병박' 그림을 그린 후 요시모치 쇼군이 그를 전설적인 조세츠의 양자로 주장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수문은 일본 선종 미술의 원조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영향을 미쳤고, 일본에서는 일본식 이름인 리 슈분 또는 한국인 슈분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미술의 '바늘 점' 전통 전체가 이수문에서 시작되어 아시카가 쇼군이 후원한 궁정파보다 더 자연스러운 예술가 그룹인 소가학파로 알려진 그의 제자들을 통해 계속되었습니다.
조선 초기 미술은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중국 화풍을 수용하고 소화하여 독자적인 한국적 화풍을 이룩했으며, 이는 후대 조선 미술의 기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안견, 강희안, 이상좌, 이암 등 뛰어난 화가들의 활약으로 조선 초기 미술은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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