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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는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불교 문화의 융성과 함께 회화 예술도 크게 발전했던 시기였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작품들이 전쟁과 시간 속에 사라져 현존하는 작품은 매우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헌 기록을 통해 당시 뛰어난 화가들의 존재와 그들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이녕(李寧)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녕, 고려를 빛낸 천재 화가
이녕은 고려시대 화가 중 유일하게 『고려사』 열전에 실린 인물로, 그의 아들 이광필(李光弼)과 함께 고려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전주(全州) 출신인 이녕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일찍이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정7품 남반직의 우두머리였던 이준이(李俊異)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합니다.
이녕의 재능은 고려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인종 2년(1124년)에 추밀사(樞密使) 이자덕(李資德)을 따라 송나라에 갔을 때, 송나라의 휘종 황제는 이녕의 재능에 크게 감탄했습니다. 휘종은 한림대조(翰林待詔) 왕가훈(王可訓)·진덕지(陳德之)·전종인(田宗仁)·조수종(趙守宗) 등 당시 궁중 화가들에게 이녕에게 그림을 배우도록 지시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녕의 대표작과 예술 세계
이녕의 대표작으로는 「예성강도(禮成江圖)」와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가 알려져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두 작품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당시 기록을 통해 그 가치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성강도」는 이녕이 송나라 휘종의 명으로 그린 작품으로, 휘종은 이 그림을 보고 "근래 사신을 따라온 고려 화공이 많았지만 이녕의 솜씨가 가장 뛰어나다"고 찬탄하며 술과 음식 및 화려한 비단옷과 명주실로 짠 비단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휘종은 이녕의 「예성강도」를 보고 "이런 그림이 고려에 있었다니…. 그 나라 전체를 통틀어 이녕만이 묘수(妙手)를 터득했구나"라고 감탄했다고 전해집니다.
「천수사남문도」에 관한 일화도 흥미롭습니다. 송나라 상인이 인종에게 그림 한 점을 진상했는데, 인종은 이를 송나라의 진귀한 명품으로 알고 이녕에게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이녕은 그 그림이 자신의 작품임을 밝혔고, 인종이 믿지 않자 그림의 뒷면 배접 부분을 열어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일화는 이녕의 화풍이 북송대의 화풍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면서도 국제적 성격을 강하게 띠었음을 시사합니다.
이녕의 화풍과 영향
이녕의 화풍에 대해서는 작품이 전해지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당시 기록을 통해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뛰어난 화가였던 송나라 휘종이 그토록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궁정취미가 짙고 시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화풍이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이녕은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으며, 「예성강도」와 「천수사남문도」는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승경(勝景)을 그린 작품으로, 이미 12세기에 고려에서는 실경산수화의 전통이 이룩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이녕이 한국 미술사에서 실경산수화의 선구자적 위치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의종 때에는 궁중의 모든 회화 작업을 주관했던 이녕은 고려 화단에서 독자적인 가법(家法)을 형성했으며, 그의 아들 이광필도 아버지의 화풍을 이어받아 명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광필은 명종의 명으로 문신들이 지은 「소상팔경부(瀟湘八景賦)」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고려시대의 다른 화가들
고려시대에는 이녕 외에도 많은 뛰어난 화가들이 활동했습니다. 화원으로는 이광필과 함께 명종을 가까이 모셨던 고유방, 의종 때의 유명한 초상화가인 이기, 「이상귀휴도」를 그렸던 박자운 등이 있었습니다.
문인화가로는 이녕의 스승이었던 이준이, 「해동기로도」를 그린 이전과 그의 아버지 이존부, 물고기를 잘 그린 정득공, 매화를 잘 그린 정지상과 차원부, 그리고 묵죽을 잘 그린 정서, 이인로, 안치민, 정홍진, 김군수, 이암 등이 있었습니다.
승려화가로는 「백의관음상」을 그린 한생, 노송과 노회를 잘 그린 석귀일, 선원사 벽화를 그린 노영과 학선, 묵죽을 잘한 석행, 원나라 유도권 화풍의 산수를 그린 혜근, 초상을 잘 그린 지암, 인물과 용을 잘 그린 석풍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왕족 중에서도 그림에 뛰어난 이들이 있었는데, 산수를 잘하고 이광필, 고유방 등과 종일토록 그림을 즐겼던 명종, 연경에 만권당을 짓고 이제현을 불러다 원나라의 조맹부와 주덕윤 등 대표적 화가들과 교류했던 충선왕, 그리고 고려 말의 공민왕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공민왕은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인물, 초상화, 산수에 모두 능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결론: 이녕의 역사적 의의
이녕은 한국미술사에서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문화가 크게 꽃피던 12세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화원으로, 독특한 가법을 형성했고 실경산수의 전통을 이루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현존하지 않지만, 그의 명성은 송나라 황제와 고려 왕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녕의 예술은 단순히 개인의 재능을 넘어 고려 회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그의 아들 이광필을 통해 화풍이 이어져 고려 회화의 전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명종이 최기후에게 "이광필이 없었다면 삼한(三韓) 그림의 맥이 거의 끊어졌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녕과 이광필 부자는 고려 회화의 맥을 이어가는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비록 그의 작품은 시간 속에 사라졌지만, 이녕의 예술 정신과 업적은 한국 미술사에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그는 우리 미술의 자긍심이자, 한국 회화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한 위대한 화가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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